다릿골농원의 김재홍 대표. 29세의 청년 농부로 경기도 안성에서 바나나를 재배하고 있다. /사진=최경민 기자
다릿골농원의 김재홍 대표. 29세의 청년 농부로 경기도 안성에서 바나나를 재배하고 있다. /사진=최경민 기자

늦여름 따스한 햇살 아래 부는 시원한 바람. 초록색 논이 파도친다. 이곳은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논이 있고 밭이 있는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농촌이다.

그런데 이곳의 한 비닐 하우스 농장에 낯선 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열대 과일 바나나. 제주도나 남부 해안가에 바나나가 자란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경기도에 바나나라니.

안성에서 경기도 최초로 바나나 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인물은 29세(1994년생) 청년 농부 김재홍씨. ‘찐터뷰’는 ‘경기도 바나나’에 대한 궁금증에 지난 24일 안성의 바나나 비닐 하우스 안에서 김씨를 직접 만났다. “으하하” 웃음을 기본으로 장착한 유쾌한 청년이었다.


경기도에서 바나나는 안 된다고? 해봤나?

김재홍씨의 안성 고삼면 바나나 비닐 하우스는 3967㎡(1200평) 규모였다. 이곳에 850그루의 바나나 나무가 있다. 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향긋하면서 이국적인 바나나 냄새가 확 난다. 원래 이곳 하우스에서는 오이를 재배했었다고. 대를 이어 농사일에 뛰어든 그가 바나나 재배에 손을 댄 것은 2019년부터다.

– 어쩌다 바나나를 기르게 됐나.
▶”열대 과수에 대해 공부를 많이하고 관심을 갖고 있었다.”

– 왜 그랬나?
▶”지역 특성상 내가 아무리 농사를 잘 해봤자 한계가 있겠다 생각했다. 농산물 지역 선호도를 볼 때 경기도는 큰 강점이 없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딸기를 예로 들어보자. 논산 딸기가 있고, 안성 딸기가 있으면 논산 딸기가 더 잘 팔릴 거 아닌가. 경기도는 기후 분포를 봤을 때도 가장 먼저 출하할 수도, 가장 늦게 출하할 수도 없는 곳이다.”

– 그런 현실을 타개하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나.
▶”사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으하하. 그냥 대체작물이 필요했을 뿐이다. 남부 지방에서 바나나를 생각보다 좀 많이 재배한다. ‘왜 경기도는 안 되나’라는 생각을 해봤다.”

바나나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여기는 경기도 안성입니다./사진=최경민 기자
바나나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여기는 경기도 안성입니다./사진=최경민 기자

바나나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여기는 경기도 안성입니다./사진=최경민 기자실제 ‘국산 바나나’는 제주와 경남 진주·산청·합천 등에서 주로 재배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산하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 따르면 국산 바나나의 90% 정도가 제주·경남 산이다. 바나나는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작물이라는 명제 그대로다. 하지만 김씨는 이 명제에 얽매이지 않았다.

– ‘경기도 바나나’가 승산이 있다고 봤나.
▶”어차피 국내에서는 기후 때문에 바나나를 비닐 하우스 시설에서 재배해야 한다. 그래서 기후는 큰 상관이 없을 것이라 봤다. 이래서 안 된다, 어떻기에 안 된다는 말들은 많은데, 사실 누가 해보지는 않았잖나?”

– 부모님께선 반대하시지 않았나.
▶”좀 많이 믿어주시더라. 오이 농사가 너무 힘들다보니까 이제 그만하시고 싶다는 생각이 크셨다. 오이 농사가 정말 힘들다. 회전 속도가 빠르고 생산량도 많다. 일 자체가 정말 많다. 오이를 따기 시작하면 수확이 끝날 때까지 단 하루도 못 쉴 정도다.”


“맨땅에 헤딩했는데, 바나나가 알아서 자라더라”

자신감과 패기는 넘쳤지만 시작은 조심스러웠다. 김씨는 “반신반의했다”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비닐 하우스 한 동에만, 135그루의 바나나 나무를 심은 이유다. 2019년 첫 재배 이후 바나나꽃이 달리기까지 딱 1년 걸렸다고. 거기서 네 달 지나자 첫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첫 출하까지 성공했다. 이제는 하우스 6동 전체에 바나나를 기르고 있다.

그가 기른 바나나는 안성 지역 하나로마트 등에서 접할 수 있다. 외국산과 달리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이라는 게 강점이다. 가격은 두 배 정도 비싸지만 명품 취급을 받는 이유다. 급식 등 지자체 사업, 그리고 임산부용 등으로 많이 소비가 된다고. 직접 맛을 보니, 바나나 특유의 향이 살아있으면서도 깔끔하다. 물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 듯 했다. 이 바나나에는 얼마나 많은 실패가 녹아있을까.

초기 자본은 많이 들지 않았나.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았다. 오이 하우스 개조를 좀 했다.”

– 바나나 농사를 가르쳐 준 사람은 있는가.
▶”그런 노하우를 누가 알려주겠나. 하하하. 그냥 실험을 하며 부딪히며 해봤다. 맨땅에 헤딩했다.”

'경기도 바나나'는 안성 지역 하나로마트 등에서 맛볼 수 있다./사진=최경민 기자
‘경기도 바나나’는 안성 지역 하나로마트 등에서 맛볼 수 있다./사진=최경민 기자

‘경기도 바나나’는 안성 지역 하나로마트 등에서 맛볼 수 있다./사진=최경민 기자 – 실패도 많이 했을 거 같은데.
▶”너무 많이 했다. 작은 열매가 나오는 나무들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1년을 키웠어도 그냥 잘라버려야 했다. 바나나가 잎이 커서 비료가 많이 들어간다. 그만큼 햇빛 양도 많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겨울에 햇빛 양이 좀 줄어들지 않나. 그런 게 좀 불리한 점이다.”

‘그런 악조건을 어떻게 극복했나’라고 질문했더니 “바나나 자기가 알아서 적응하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바나나가 환경 적응성은 정말 뛰어나다. 먹은 만큼만 만들어낸다. 그래서 외국산보다 열매가 좀 작다”는 말도 덧붙였다. ‘맨땅에 헤딩은 했지만, 바나나가 알아서 잘 자랐다’는 모순된 답. 성공의 비결을 ‘자신’이 아니라 ‘바나나’에 돌린 것이다. 이런 낙관적이고 쿨한 자세가 오히려 20대 농부의 패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씨는 바나나 농사의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단 매출은 오이 농사 시절과 비슷하지만 일은 5분의1로 줄었다. 그만큼 또 다른 농사와 사업 구상에 힘을 더 줄 수 있다. 하우스 난방비 등에 생각보다 큰 돈이 들지 않았다고. 오이 농사 시절보다 난방비를 10% 정도 더 쓰는 정도라 한다.


‘바나나’에 담긴 진심…”청년 농부가 농촌에서 역할해야”

그런데 김재홍씨는 인터뷰 말미에 “냉정하게 말하면 바나나 농사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말했다. 이제 막 출하에 성공한 사람이, 이게 무슨 말일까. 친환경 프리미엄 바나나 시장에 몰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만큼 이익 창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는 “수익이 안 날 것 같으면 바로 재배 종목을 바꿀 생각도 있다”며 “예전처럼 하던 농사를 계속하는 식으로 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더 빠르게 새로운 작물을 찾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염두에 두고 있는 다음 작물이 있냐는 질문에는 “지금 생각하는 게 있긴 한데, 사실 그때가 되어봐야 알 것 같다”고 말을 아낀다.

경기도 안성의 다릿골농원. 초록색 바나나 열매를 따서 여름엔 3일, 겨울엔 5일 정도의 후숙 과정을 거치면 노란색 바나나가 된다. /사진=최경민 기자
경기도 안성의 다릿골농원. 초록색 바나나 열매를 따서 여름엔 3일, 겨울엔 5일 정도의 후숙 과정을 거치면 노란색 바나나가 된다. /사진=최경민 기자

경기도 안성의 다릿골농원. 초록색 바나나 열매를 따서 여름엔 3일, 겨울엔 5일 정도의 후숙 과정을 거치면 노란색 바나나가 된다. /사진=최경민 기자그가 벌써 ‘다음 스테이지’를 바라보는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 농업의 현실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농고와 한국농수산대학을 나왔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농사”라는 생각으로 농업 외길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농업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았다. 고질적인 고령화에 지구온난화, 코로나19까지 겹친 농촌의 현실은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고 있는 그는 청년 농부들을 구심점으로 해서 농촌의 복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자금 지원 등 혜택을 받아 귀농한 청년 농부들이 △새로운 고부가 가치 작물에도 도전하고 △트랙터 등 장비 운용에도 손을 보태고 △드론 등을 이용한 방제 등에도 앞장서서 ‘지역 융합’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그가 ‘바나나’에 도전한 것도, 또 다른 새로운 작물을 구상하고 있는 것도 모두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김씨는 “농업에 약간 우울한 전망이 많다. 정부의 개입과 역할이 있지 않은 이상 현재 상태를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내가 있는 안성시 고삼면만 해도 소멸 위험 지역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지역 축제가 없어지니 특산물 자체가 없어지고 있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 농부들이 변화에 대한 대응과 대처가 좀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청년 농부로 혜택을 받은 만큼 지역을 위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청년 농부 김재홍씨가 지난 24일 경기도 안성 다릿골농원에 핀 바나나꽃을 들춰보고 있다./사진=최경민 기자
청년 농부 김재홍씨가 지난 24일 경기도 안성 다릿골농원에 핀 바나나꽃을 들춰보고 있다./사진=최경민 기자

청년 농부 김재홍씨가 지난 24일 경기도 안성 다릿골농원에 핀 바나나꽃을 들춰보고 있다./사진=최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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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경기)=최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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