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으로 뚜렷이 드러난 필수의료 붕괴 문제를 풀어갈 핵심은 ‘돈’이라는 게 의료계 전반의 목소리다. 비현실적인 수가를 끌어올려 필수 의료 영역의 의사 수를 충분히 확보하는 한편, 의료 인력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의료 전달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투입될 막대한 자금은 국민건강보험이 담당해야 하는데 국민의 십시일반으로 마련된 보험 예산은 제한적이다. 국가 의료 체계를 ‘리셋(reset)’해 원점에서부터 모든 것을 다시 쌓아 올려야 하는 막연한 일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의료계에서는 우리나라와 의료 환경이 가장 유사한 일본 의료 체계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부 주도의 건강보험 제도가 뼈대가 된 의료 체계를 갖췄다. 2020년 기준 임상 의사 수를 비교해도 우리나라(2.5명)와 비슷한 수준(2.6명)이다.
하지만 일본 의료 수가는 우리의 3배 이상이다. 당직비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의사가 당직 근무를 설 때 시간 외(6~9시, 18~22시) 50%, 심야(22~6시) 100%, 휴일 150%의 근무비 가산율을 적용한다. 시간 외 근무를 서면 평일 근무 수당의 1.5배를 받는다는 얘기다. 심야 근무는 2배, 휴일 근무는 2.5배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야간(18~9시), 토요일 및 공휴일 진료 시 진찰료(초진·재진) 및 조제료 가산율은 30%에 불과하다.
의사가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에 나서게 할 간접적 금전 유인책도 확실하다. 한때 일본에서 의료 소송과 분만 기피 등으로 산부인과 지원자가 대폭 줄자 정부는 인과 관계와 상관없이 뇌성마비 환아의 산모에 정부가 3000만엔(2억9000만원)을 보상하는 ‘산과무과실보상제도’를 마련했다. 우리나라도 이와 유사한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를 도입했지만 분만 과정에서 신생아가 뇌성마비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경우 의료진 과실이 없어도 의사기 30%를 부담해야 한다.
정부는 필수의료 수가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산부인과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적자가 많이 나는 어린이병원의 경우 추후 적자를 평가해 이를 보전해 주는 수가를 개발하겠다는 것. 이른바 ‘공공정책수가’를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여기에 투입될 예산 규모를 평가하기 어려운데다가 건강보험 재정이 녹록지 않다.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은 흑자를 냈지만 이는 코로나19 유행으로 병원 방문 횟수가 줄어든 영향이 크다.
보건당국 안팎에서는 일본의 상대적으로 높은 건강보험 국고 지원 비율이 언급된다. 일본의 국고 지원 비율은 28.4%로 한국이 건강보험법으로 정해놓은 ‘20% 상당’의 의무 지원율보다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비율도 제대로 안 지켜진다. 2007년부터 최근까지 국고 지원은 연간 보험료 수입의 약 14%인 것으로 파악된다. 국고 지원 비율을 제대로 지켜 건보재정 악화를 최소화하면 수가 현실화에도 대비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 의료계 안팎에서 나온다.
건강보험 외 재원 마련 방법도 거론된다. 중증 필수 의료 분야 지원을 위해서는 건강보험재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별도 기금과 특별 예산을 편성하는 등 재원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 주장이다.
무턱대고 수가만 끌어올려서도 안 된다는 조언도 나온다. 수가 인상 후 이른바 ‘빅 5’로 통하는 대형병원으로의 의료 인력 쏠림 현상이 더 심화해 지방 병원 인력난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를테면 뇌혈관 수술 수가를 대폭 인상해 수익이 나면 그나마 있던 지방 병원 전문의조차 서울 대형병원으로 다 빠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간호계 등에서 주장하는 전반적 의사 수 확대 문제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실제로 정부가 추진하려는 공공정책수가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의료계 일각에서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이기일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의사 수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며 의료계와 계속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며 “협의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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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준,이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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