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 시절 가장 먼저 교체된 뒤 관중석에서 고개 숙이고 있는 이강인./사진=마르카
발렌시아 시절 가장 먼저 교체된 뒤 관중석에서 고개 숙이고 있는 이강인./사진=마르카

이강인(21·마요르카)에게 발렌시아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팀이었다. 불과 10살 때 스페인으로 날아가 발렌시아 유소년팀에 입단한 뒤, 연령별 유스팀을 거쳐 프로 데뷔의 꿈까지 이루게 해 준 팀이었기 때문이다.

남다른 재능에 발렌시아 구단은 물론 스페인 내에서도 이강인을 발렌시아의 미래로 꼽았다. 무려 8000만 유로(약 1135억원)에 달하는 바이아웃(이적 허용 금액)이 포함됐던 발렌시아와 이강인의 계약은, 발렌시아가 이강인을 통해 이 정도의 이적료 수익을 얻겠다는 뜻보다는 다른 팀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미가 더 강했다.

그러나 이강인은 정작 1군 데뷔 후 온갖 설움을 겪었다. 선발보다는 교체로, 교체보다는 결장하는 경기가 더 많았다. 꾸준하게 출전 기회를 얻어야 할 시기인데도 그라운드를 누빌 기회가 많지 않았다. 선발로 나서고도 가장 먼저 교체된 뒤 벤치에서 고개를 숙인 채 좌절하고 있던 그의 모습은 스페인 현지에서조차 안쓰럽게 볼 정도였다.

출전뿐만 아니라 계약 막판엔 거취를 두고도 설움을 겪었다. 그의 이적을 추진하던 발렌시아는 또 다른 비유럽권 선수를 먼저 영입하면서 사실상 이강인에게 방출 통보를 했다. 이강인을 포함해 이미 3명의 비유럽권 쿼터가 차 있던 상황에 새로운 선수를 더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이강인은 남은 계약을 채우지 못하고 계약해지를 통해 팀을 떠났다. 사실상 방출이었다.

꾸준하게 출전할 팀을 찾았던 이강인은 발렌시아보다는 다소 전력이 약한 마요르카에 새 둥지를 틀었다. 적응 기간을 마친 뒤 이번 시즌에는 그야말로 재능이 폭발했다.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소속팀의 핵심은 물론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미드필더로 자리 잡았다. 자연스레 현지에선 이강인을 자유계약을 통해 떠나보낸 건 피터 림 발렌시아 구단주의 최대 실수라는 지적까지 나왔을 정도다.

23일 스페인 발렌시아 메스타야에서 열린 발렌시아 원정경기에 출전해 드리블 돌파를 하고 있는 이강인. /사진=마요르카 SNS 캡처
23일 스페인 발렌시아 메스타야에서 열린 발렌시아 원정경기에 출전해 드리블 돌파를 하고 있는 이강인. /사진=마요르카 SNS 캡처

23일 스페인 발렌시아 메스타야에서 열린 발렌시아 원정경기에 출전해 드리블 돌파를 하고 있는 이강인. /사진=마요르카 SNS 캡처23일(한국시간) 스페인 발렌시아 메스타야에서 열린 발렌시아 원정길. 이강인에게는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를 경기였다. 이미 지난해 마요르카 이적 직후 한 번 원정길에 오른 적이 있지만, 당시엔 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뒤 경고누적 퇴장을 당하는 바람에 아쉬움을 삼켰다. 그러나 1년 새 이강인은 완전히 다른 선수가 돼 다시 정들었던 메스타야를 찾았다. 발렌시아 현지에서도 경계대상 1호로 그를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강인은 보란 듯이 역전 결승골을 터뜨렸다. 후반 38분 페널티 박스 안 왼쪽에서 공을 잡은 그는 상대 수비수 2명을 잇따라 제친 뒤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겨다 주는 골이자, 앞서 발렌시아 1군에서 겪었던 설움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강인은 득점 직후, 두 손을 머리 위로 모으고 세리머니를 자제했다. 10년 간 몸을 담았던 친정팀, 그리고 팬들을 향한 정중한 예우였다. 그간의 설움을 털어내려는 화려한 세리머니 대신, 마지막까지 친정팀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은 덕분에 이날 이강인의 골은 다른 의미로 더욱 값졌다.

현지 매체들이 이강인이 이날 세리머니를 하지 않은 것에 주목한 것 역시 앞서 발렌시아에서 적잖은 설움을 겪었음을 그만큼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적료를 받기는커녕 계약 해지를 통해 그를 방출했던 발렌시아만 가슴이 더욱 쓰린 상황이 됐다. 이강인은 “축구를 시작하고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며 친정팀을 상대로 결승골 당시를 돌아보면서 “발렌시아 구단도, 팀 동료들이 다 잘 됐으면 좋겠다. 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마요르카 이강인이 23일 친정팀 발렌시아 원정에서 골을 넣은 뒤 두 손을 모으는 세리머니로 친정팀을 예우하고 있다. /사진=마요르카 SNS 캡처
마요르카 이강인이 23일 친정팀 발렌시아 원정에서 골을 넣은 뒤 두 손을 모으는 세리머니로 친정팀을 예우하고 있다. /사진=마요르카 SNS 캡처

마요르카 이강인이 23일 친정팀 발렌시아 원정에서 골을 넣은 뒤 두 손을 모으는 세리머니로 친정팀을 예우하고 있다. /사진=마요르카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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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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