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응급구조사 김모씨가 입사하기 전 강원도의 한 민간 구급 이송업체 관계자와 나눴던 통화 녹취록. 한달 휴일(오프)가 4일이라는 답변을 받았다./사진제공=김씨
전직 응급구조사 김모씨가 입사하기 전 강원도의 한 민간 구급 이송업체 관계자와 나눴던 통화 녹취록. 한달 휴일(오프)가 4일이라는 답변을 받았다./사진제공=김씨


계약서 도장 찍고도 ‘체불임금지급’ 소송 건 이유

퇴사한 김씨는 지난 4월 A회사를 상대로 체불임금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 초과근무, 야간·휴일 근무 수당을 지급하라는 취지다.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단독13부(부장판사 홍기찬)는 최근 두번째 변론 절차를 열었다.

김씨의 소송대리인(변호사)은 “쉽지 않은 싸움”이라고 했다. 김씨가 계약서에 승인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포괄임금 계약의 부당함을 입증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판례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 포괄임금제를 인정한다. 법원이 응급구조사의 근무 형태를 볼 때 포괄임금을 지급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김씨 소송대리인은 “출동수당을 산정해 지급할 수도 있다는 점을 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씨도 패소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안다. 소송 제기 전 김씨는 A 회사에게 협박죄로 형사고소당했다. 체불 임금 지급을 요구했다가 고소당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대부분 응급구조사가 포괄임금제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하고 있다”며 “현실을 조금은 바꿀 수 있을까 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했다. 응급구조사 처우 문제는 전부터 제기돼 왔다. 지난해에는 경남 김해에서 한 응급구조사가 업체 상급자에게 구타를 당해 숨진 일이 있었다. 당시 구조사는 임금체불 등 노동관계법 위반 사안이 11건 발견됐다고 전해졌다.


쉬는날 없이 기숙사에서 출동대기…근무수당도 없어

A 회사는 사설 구급차 20여대를 운영했다. 한대당 운전기사와 응급구조사가 한명씩 배정됐다. 이들은 A 회사의 직원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했다. 근무일에는 출·퇴근 개념 없었다. 한달에 허용된 휴일(오프)은 나흘이었다.

강원도 내 구급차 수요가 있으면 회사는 출동지시를 내렸다. 하루에 보통 3번, 많게는 7번 출동했다. 밤, 주말, 공휴일, 명절 모두 상관없었다. 밤이면 운전기사가 응급구조사를 깨워서 출동했다. 김씨는 “새벽 1시에 출동해 새벽 5시에 복귀한 적도 있다”고 했다.

언제 출동지시가 내려질지 예상할 수 없었다. 기숙사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출동지시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하며 긴장했다. 외식은 불가능했다. 주식은 라면이었고, 가끔 시켜먹는 치킨이 특식이었다고 한다.

경찰과 소방도 야간·주말 출동 수요가 있지만 이들은 비번과 휴일이 보장된다. ‘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교대조 없이 휴일을 뺀 나머지 날은 하루 종일 대기 상태였다”며 “일주일에 하루만 쉰 꼴인데 사실상 하루 24시간씩 6일 주 144시간 근무를 한 셈”이라고 했다.

김씨는 한달에 포괄임금 230만원을 받았다. 추가 근로, 야간·휴일 근무 수당을 받지 못하는 구조였다. 회사는 ‘업무 특성상 근무 시간이 불규칙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김씨는 입사할 때부터 부당한 계약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 민간 구급 이송업체들이 이같이 포괄임금제를 적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낮에는 정상 근무를 하고 야간에 출동 건수마다 수당을 지급하는 업체도 생겼다고 들었다.

하지만 김씨는 계약을 받아들였다. 그는 “병원 응급실은 응급구조사를 제한적으로 뽑는다”며 “강원도 등 비수도권은 한번 응급구조사를 뽑는다고 하면 경쟁률이 수십 대 1로 치솟아서 뽑히면 계약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박시은 광주동강대학교 응급구조학과 교수는 보건복지부에 민간 구급 이송 문제를 제기해 왔다. 박 교수는 “매년 환자 30만~40만명이 응급구조사 도움을 받아 민간 구급차로 병원에서 다른 병원까지 전원하는데 부실한 처우는 꾸준히 문제였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가 부실한 노동처우 현황부터 철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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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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