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유모차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2023.2.13/뉴스1 박명훈 기자

“신호등이 없으니 차들도 보행자를 무시하고 쌩쌩 달리네요. 부딪힐까 봐 무서워요.”

지난 13일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세월교에서 만난 한 시민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사고가 날까 긴장된다고 하소연했다.

현장을 찾은 취재진도 도로 일대에 화물트럭 등 여러 차량들로 가득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수영강을 낀 반여4동과 반여1동을 이어주는 교통 요충지로, 교통체증이 빈번한 구역이다. 많은 교통량에도 차량·보행자 신호등이 없어 사고 위험이 항상 도사리는 곳이기도 하다.

운전자에게 보행자 안전 의무가 먼저 있음에도 오히려 보행자들이 차량을 눈치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보행자 신호기 설치를 위해선 차량 신호기 설치가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세월교 굴다리의 낮은 높이에 따른 시야 확보의 어려움 등 도로 여건상 차량 신호기를 설치할 수 없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세월교 굴다리에서 나온 차량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안내 표지판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일부 보행자는 양옆에서 오는 차량들을 이리저리 살피며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나 어르신이 탄 휠체어를 끌고 허겁지겁 횡단보도를 건넜다.

경찰에 따르면 도로교통법상 스쿨존 내 보행자 신호기가 없는 횡단보도에선 보행자 유무와 관계없이 한번 일시 정지해야 지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지켜질리 만무했고, 횡단보도 한복판에 보행자가 있음에도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는 차량도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A씨(77)는 “밤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일 뻔한 적이 있다”며 “대다수 차량이 쌩쌩 달려 횡단보도로 다닐 때마다 무섭다”고 토로했다.

주민 B씨는 “예전부터 이곳에 아슬아슬한 장면이 몇번이나 있었는데 도대체 신호등이 언제 설치되는 것인가”며 “신호등을 빨리 설치해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다가오는 승용차에 멈춰 달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2023.2.13/뉴스1 박명훈 기자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이 횡단보도 일대에서 발생한 차량-보행자 사고는 9건으로 나타났다.

이중 중상을 당한 보행자는 5명이고, 경상 환자는 4명이었다. 2013년 8월에는 60대 보행자가 횡단하던 중 화물차에 치여 숨진 사고도 있었다.

주민들의 지속적인 민원 요구에도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은 요원해 보인다. 경찰과 해운대구는 지난 16일 주민 공청회를 열었지만, 교통체증 등을 이유로 신호기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어 신호기 설치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 관계자는 “신호등 설치와 관련해 국민신문고에도 민원이 몇차례 올라왔다”며 “그동안 신호등 설치를 위해 노력했지만 도로 여건상 불가능했다. 주민 의견 조율을 위해 주민 공청회를 추가로 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부산에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차에 치이는 등 비슷한 사고도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5일 오후 7시35분쯤 부산 수영구 망미동 한 도로에서 40대가 몰던 승용차가 좌회전을 하다 보행자 C씨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았다. C씨는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이송됐다.

마찬가지로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 부산 서면에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가 다수 있어 안전 우려에 대한 목소리도 나온다.

최양원 영산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반여동 세월교 앞 횡단보도의 경우 도보 이동량이 많아 사고 위험이 커 신호등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며 “사망 사고가 한 건이라도 있거나 사고 빈도가 잦은 횡단보도는 경찰이 별도로 위험 구역으로 지정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blackstam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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